동대문나눔연대와 한국체험학습강사협회에서
저소득가정 어린이를 대상으로 월1회 실내 체험학습을 진행합니다.

일시: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오후 3시~5시

장소: 동대문나눔연대

프로그램: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실내 환경체험프로그램

대상: 저소득가정 어린이 15명
참가비: 무료

문의: 동대문나눔연대 02-2216-0758

07

2010-Mar

공지사항 동대문나눔연대 회원산행!

작성자: 조회 수: 3067

     seoulcastlemap.jpg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오랫만에 동대문나눔연대 회원들 얼굴마주치고 인사도 나누고
봄바람도 맞으며 산뜻하게 인사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동대문나눔연대 상반기 회원산행 공지입니다.

일시: 2010년 3월 28일 오전 10시
장소: 북악산 서울성곽길 걷기(약 2시간 코스)
만나는 곳 : 한성대 입구역 2번출구 오전 10시
준비할것 : 점심값, 간식, 음료등

문의 : 동대문나눔연대 02-2216-0758
          이윤재 010-7149-9788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도성전투' 실제로는?

[우리동네 역사체험] 걸으면서 배우는 '서울성곽'의 역사①

이윤재 동대문나눔연대 대표
<민중의소리>는 이윤재 동대문나눔연대 대표의 ‘우리 동네 역사체험’ 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역사체험’은 아이 손을 잡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유적지를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이윤재 대표는 동대문나눔연대 '놀토교실'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체험학습강사협회 소속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민중의소리> 독자들이 직접 체험한 ‘우리 동네 역사체험’을 투고해주시면, 이 연재가 보다 풍성하게 꾸며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네 역사유적지나 산책하기 좋은 장소가 있으신 분은 jjy@vop.co.kr로 언제든 글과 사진을 보내주세요.


'우리 동네 역사체험'에서 두번째로 소개할 장소는 서울성곽(한양성곽)이다. 성곽의 둘레만 총 18.2km인 성곽길을 중심으로 인근의 근현대사 문화유산까지 포함해 총 5회에 걸쳐 탐방을 함께 할 예정이다. 서울성곽도 문화재청과 서울시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가능한 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한 정비사업을 진행중에 있다.

다섯 차례의 탐방이 진행될 순서를 먼저 설명하면,
첫 번째 탐방은 성북동 ~북악산 숙정문 ~ 창의문(자하문)으로 내려오는 북악산 성곽길,
두 번째 탐방은 창의문 ~인왕산 ~ 사직단까지의 인왕산 성곽길,
세 번째 탐방은 서대문 ~ 정동 ~ 남대문의 정동 일대,
네 번째 탐방은 남대문 ~ 서울타워~ 광희문의 남산 성곽길,
다섯 번째 탐방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혜화문까지의 낙산 성곽길이다.


먼저 성곽답사를 떠나기 전 우리가 살고 있는 수도 서울과 조선의 한양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성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실내 공부를 하고 떠나보도록 하자.

서울성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수선전도

수선전도. 조선시대 한양지도로 형광색 부분이 경복궁, 서울성곽, 4대문과 4소문이다.ⓒ 민중의소리

1392년 개성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 후 한양천도 계획을 명하고 3년 뒤인 1395년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최측근인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성곽(한양성곽)을 축성하기 시작한다.

서울성곽은 풍수지리 명당론에 따라 한양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4대산인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길이 18.2km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 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고,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고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그 후 27년이 지나 세종은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사업을 벌여 세종 4년(1422) 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이었으니 서울인구의 3배가 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동원된 국가적인 토목 공사였다. (비교하자면 오늘날 4대강 사업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실로 전국의 힘쓸만한 장정들은 대부분 동원되었던 것이다.

인부의 대부분은 농민들이었는데 추운 겨울 자신이 먹을 식량을 지게짐 지고 올라와 임금도 못받는 강제부역을 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동사, 압사, 아사, 골병이 들어 축성공사에서만 사망자가 872명에 달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있다. 실록에 기록된 사망자 수 외에도 골병 든 몸으로 고향에 내려와 죽은 농민까지 포함을 한다면 1천명이 넘는 전국의 백성들이 임금도 받지 못한채 왕명에 의한 한양 도성축성으로 목숨을 바친 것이다. 조선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되는 세종 재위시기의 농민들의 처지가 이러하였다.

이후 서울성곽을 재정비 했던 숙종 30년(1704)까지 260년간 서울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 본래 서울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였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성곽은 큰 전란에서는 제 구실을 할 수 없어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다. 따라서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도성전투는 없었다.

임진왜란의 교훈을 토대로 인조는 서울 성곽과는 별도로 전쟁에 대비한 남한산성과 강화도산성을 수축하였으나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하며 이마를 땅에 9번 찧으며 군신관계를 맹세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다. 이때 맺은 조약에 조선은 앞으로 기존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 쌓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서 서울성곽은 방치된 상태로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704년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협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전의 서울성곽이다.

이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에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의 평지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오늘은 서울성곽의 역사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함께 공부해 보았다. 다음 시간부터는 등산화 신고 수첩 들고 본격적인 역사탐방을 시작해보자. 그 때까지 예습 열심히 해 주세요.

[참고자료] 문화재청 북악산 서울성곽 홈페이지(http://www.bukak.or.kr/index.asp), '다시찾는 우리역사'(한영우 저)

시대별 성곽축조기술의 변천모습.

시대별 성곽축조기술의 변천모습. 가운데 부분이 세종때 태조때 메주만한 돌로 쌓은 성곽이고 좌우로는 숙종 30년의 성벽으로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다.ⓒ 이윤재


서울성곽

서울성곽.ⓒ 이윤재


서울성곽

서울성곽.ⓒ 이윤재



05

2010-Mar

활동소식 덴마크의 복지

작성자: 조회 수: 2621

유신독재 '중정의 추억'이 남아있는 '의릉'

[우리 동네 역사체험] 박정희 낚시터로 전락...30여년 만에야 공개

이윤재 동대문나눔연대 대표
<민중의소리>는 이윤재 동대문나눔연대 대표의 ‘우리 동네 역사체험’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 동네 역사체험’은 아이 손을 잡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유적지를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이윤재 대표는 자신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서, 앞으로 소개할 장소가 서울로 좁혀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전해왔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민중의소리> 독자들이 직접 체험한 ‘우리 동네 역사체험’을 투고해주시면, 이 연재가 보다 풍성하게 꾸며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네 역사유적지나 산책하기 좋은 장소가 있으신 분은 jjy@vop.co.kr로 언제든 글과 사진을 보내주세요.


도시 사람들에게 제주의 ‘올레길 걷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복잡한 일상에 업무 과다로 피로한 현대인들에게 올레는 제주의 자연을 걷는 행위만으로도 심신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인지 지리산 둘레길, 강화 역사유적길 등 다른 곳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도시 사람들이 모두 훌쩍 제주로 떠날 수는 없는 일. 주말 연인과 함께, 아이 손을 잡고 내가 사는 곳, 우리 동네 나만의 산책길을 걸으며 일상에 지친 영혼을 씻어낸다면 그것이 바로 '올레'가 아니겠는가.

필자는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만 31년 동안 살아왔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앞으로 연재를 통해 주로 서울에 있는 문화유적지와 산책하기 좋은 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록 제주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선물로 받지는 못하겠지만, 한성백제부터 조선왕조까지 500년 수도로 기능해온 서울에 수많은 역사유물이 있지 않은가.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진행하면서 역사수업을 했던 장소와 필자가 답사를 했던 장소 중 추천할 만한 코스를 소개해 나가려고 한다.

이문동 의릉

의릉은 조선 20대 왕인 경종과 선의왕후의 능이다.ⓒ 이윤재



이 연재의 테마가 ‘우리 동네 역사체험’이니만큼, 첫 번째 순서는 필자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근처 유적지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첫 번째 소개할 곳은 2009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의릉’이다.

조선시대 릉이 수도권에 밀집돼있는 이유

조선왕릉 40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시민들이 왕릉을 찾는 발길이 다시 늘고 있다. 유네스코는 조선왕릉에 대해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한 제례의식을 통해 지금도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점, 조선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는 점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를 포함한 왕실 가족의 무덤을 신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하였는데, 왕과 왕비 및 추존왕의 무덤을 ‘능’, 왕세자와 왕세자비 및 왕의친부모의 무덤을 ‘원’, 나머지 왕족의 무덤을 ‘묘’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인들에게 왕릉 나들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잠든 왕릉에 일반인들이 발을 들여놨다간 제 아무리 벼슬이 높은 양반이라도 능지기(참봉)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쫓겨나는 신성한 곳이었다.

3단으로 구성된 조선왕릉

3단으로 구성된 조선왕릉.ⓒ 문화재청 홈페이지

왕릉 주변으로 조성된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은 땔감이나 집짓기로 좋은 나무들이었지만 벌목은커녕 낙엽 한 장도 외부로 유출할 수 없었다. 이렇게 지켜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간’ 왕릉이 남쪽에만 모두 40기에 달하는 것이다. 왕릉 중 북측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을 제외한 39기가 서울에서 100리(약 40㎞)안에 남아있다. 조선 왕릉이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 이유는 왕릉을 조성할 당시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반경 10리(4km)밖 100리(40km)안에 왕실능역을 두도록 정한 국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작은 땅에 묻히게 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왕들은 죽어서도 특별대우를 받았다. 풍수지리상 가장 좋은 곳으로 왕릉을 조성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릉 주변은 또 하나의 궁궐이었다. 의릉의 크기는 43만 4386㎡, 약 13만 1400평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렇듯 전국에 있는 왕릉 40군데의 면적만 합쳐도 총 1935만㎡(585만평)에 달한다. 당대의 왕릉은 조선왕조의 철학과 제례, 그리고 건축ㆍ토목양식을 총 망라한 문화재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능은 왕릉이 있는 능침공간과 석물들이 있는 2단, 3단 부분, 그리고 주변에 부속건물과 숲, 잔디밭 등이 있는 공간으로 나뉜다.

능침공간에는 양지바른 곳에 넓은 풀밭을 만들고 거대한 능을 만든다. 옆으로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병풍석 12면을 세운 뒤 13칸의 난간석을 두른다. 그 외에도 돌로 만든 양과 호랑이상 각 2쌍과 혼유석을 배치하고 양쪽에 망주석을 1쌍 세운다. 그 옆으로 다시 3면의 곡장을 설치하고 나서야 능침공간이 완성된다.

한단 아래에는 문인석과 석마 1쌍, 그리고 혼령에게 길을 알려주는 장명등이 배치된다. 다시 그 한단 아래에는 무인석과 석마 1쌍이 배치되는 등 2단, 3단 부분이 있다. 그 주변으로는 수복방, 수라간, 어도(임금 행차길), 우물 등을 만들고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때죽나무, 오리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철쭉, 진달래 등이 넓게 펼쳐 봄에는 꽃향기를, 여름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상록수의 푸르름을 각각 뽐낸다. 동구릉, 영릉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왕릉은 무덤을 확인할 수 있는 봉분영역은 학술을 목적으로 한 관람객들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유신독재 하에서 수난 겪은 '의릉'

의릉은 조선 20대 왕인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의 능이다. 경종은 4년이라는 짧은 기간 재위했던 왕으로 19대 왕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난 외아들이다. 장희빈이 인현왕후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 사약을 받으며 어린 왕세자의 고추를 잡고 늘어져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고, 이후로 항상 시름시름 병약하였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노론정권은 경종이 너무 병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에게 빨리 왕위를 물려줘야 된다고 압박하였다. 이처럼 왕위에 올라 4년간 병석에서 보내다가 노론, 소론 간의 당쟁으로 뚜렷한 치적도 남기지 못하고 1724년(경종 4) 8월 25일 창경궁 환취정에서 승하하였다. 같은 해 12월 16일 양주 중량포의 천장산 기슭 언덕에 예장하고 능의 이름을 의릉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6년 후 1730년(영조 6) 6월 29일 경덕궁 어조당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계비 선의왕후가 승하하자 같은 해 10월 19일 경종 왕릉 아래에 능을 조영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사적 204호로 지정된 문화재였으나 1960년대 초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의릉 경역 내에 자리 잡았던 탓에 일반인에게는 철저히 봉쇄된 구역이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는 등 훼손이 심해 궁궐의 후원처럼 변모하였다. 국가안전기획부로 변경된 중앙정보부가 이사를 가면서 안기부의 주요건물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능의 영역은 1996년 5월 1일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었다

'유신독재의 흔적' 새겨진 의릉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 사초지에 조성했던 인공연못, 현재에는 남아있지 않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의릉

연못이 없어진 현재의 모습.ⓒ 이윤재



의릉은 다른 왕릉들처럼 긴 세월을 별 탈 없이 견뎌왔지만, 1962년 중앙정보부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다음부터 왕릉의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기 시작하였고, 국민들의 접근금지 구역이 되었다.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는 왕릉의 우측 능선을 깎아서 넓은 축구장을 조성하고 콘크리트 청사 건물을 세우는가 하면, 좌측 능선 역시 청사를 짓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냈다.

1972년경에는 정자각 앞과 홍살문 사이 사초지의 땅을 파서 인공으로 연못을 만들고 관상어를 기르며, 외래수종 식재와 전통에 어울리지 않는 조경 시설물들을 설치하였는데, 박정희가 자주 들러 연못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과 격리된 채 원형을 잃고 궁궐의 후원처럼 변모해 버렸던 의릉은 약 30년 만인 1995년 중앙정보부의 이전으로 접근 금지 구역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의릉은 능의 주인인 경종이 당쟁 속에 순탄치 못한 짧은 삶을 살다간 것과 같이 많은 고난을 겪었다.

2003년 발굴조사 당시 남아 있던 고 건축물은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 뿐이었으며 수복방, 수라방, 재실은 멸실되어 남아 있지 않았다. 현재 수복방, 재실 등의 공간은 복원중으로 완전한 왕릉의 모습을 갖출 준비를 하고있다.

자연과 함께 산책할만한 녹지가 없는 서울에서 조선의 임금과 백성들이 정성들여 가꿔놓은 조선왕릉은 도시 서울에 사는 후세들의 휴식을 위한 조상들의 선물이 아닐까?

의릉

의릉은 조선 20대 왕인 경종과 선의왕후의 능이다.ⓒ 의릉


의릉

의릉은 조선 20대 왕인 경종과 선의왕후의 능이다.ⓒ 이윤재


의릉 내 중정 건물

이후락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중정 건물. 역사적 중요성이 있어서인지 한예종으로 편입되지 않고 의릉 내에 보존되어 있다.ⓒ 이윤재


의릉에서 설맞이 윷놀이 하는 동네 주민들

국민들과 격리된 채 원형을 잃고 궁궐의 후원처럼 변모해 버렸던 의릉은 약 30년 만인 1995년 중앙정보부의 이전으로 접근 금지 구역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사진은 의릉에서 설맞이 윷놀이에 한창인 동네 주민들.ⓒ 이윤재



<이윤재 동대문나눔연대 대표 >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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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밀려왔습니다.

지난달 독서교실에서는 안동캠프로 인해 독서토론을 못하고,
이번주 독서교실이 올해 첫 독서교실이었네요.
모두들 학년이 하나씩 올라가고 작년 3월에 만났을때보다 키도 훌쩍 커졌습니다.

한글읽기가 서툴러 책읽는것이 힘겨웠던 2학년 아이들도 이제 3학년에 올라가면서 만화로 된 역사책도 읽게 되었고, 발표에 수줍던 어린이들도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발표할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올라갔습니다.

지난달에 2월책을 나누어 주지 않아,
2월 독서교실에서는 <동대문정보화 도서관>에 방문하여 3월에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기 위해 방문하였습니다. 학년별로 담임교사와 함께 관심있는 책을 골라보고 선생님과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얘기하였어요.

이제 3학년이 올라가는 아이들은 어린이 철학동화 <레의 모험>
이제 4학년 어린이들은 오후4시 베이커리를
6학년 어린이들은 과학쟁이, 생각쟁이를 하나씩 골랐습니다.

2010년 독서교실이 시작되는게 모두들 기대가 됩니다.
3월 2째 토요일에는 <중랑천 체험학습>입니다.

문의: 동대문나눔연대 02-2216-0758 조수연

▲일찍온 3학년 친구들은 나눔연대에서 만화책을 보고있습니다.

▲세빈이는 아침을 먹고오지 않았네요... 도시락으로아침식사를

▲동대문정보화 도서관에 도착!

▲승환, 성민이는 독서대까지 이용해서 책들을 보았어요.

▲책보기 싫은 5학년 세빈이는 윤재쌤과 장기한판!
작년 함께 수업했던 친구 5학년 준형이가 전학을가서 혼자인 세빈이...
담달부터는 5학년 친구를 만들어주어야 겠어요.

▲한글책 읽기가 서툴렀던 성민이는 이제 역사만화 한권쯤은 읽고 발표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키가 훌쩍 커진 4학년 윤아(소녀시대 아닙니다.)

▲이제 6학년에 올라간 아이들은 과학잡지 삼매경입니다.
 이 친구들이 이렇게 책을 열심히 보는 모습은 처음이네요.

▲어린이 교양지와 사회잡지는 정기구독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순정만화도 보았구요.

▲이제 중학교 올라가는 나린이는 단발머리가 되었네요^^ 친언니같은 영빈쌤이랑 중학교 생활 상담중이에요.

▲든든하게 점심도 먹고,

▲디저트로 빵도먹고.. 역시 성장기 아이들은 많이 먹습니다.

▲윤아는 아기를 좋아해요. 수연쌤 조카를 어찌다 잘보던지요. 완전 의젓!

 ▲주환쌤 취직턱으로 교사모임은 커피빈에서 했습니다.

26

2010-Feb

100226 아름다운가게 워크샵 후기

작성자: 조회 수: 2030

아... 오늘은 정말로 바쁘고도 바쁜 하루이다.
아침 7시부터 현욱이형 선거운동에 마치자마자

올해 <어린이놀토교실>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참석하게된 아름다운가게 주최의
풀뿌리단체 워크샵 풀뿌리가 희망이다.에 참석하였다.

오전에는 지원단체별로 프로그램발표 및 공유의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연아 스케이팅감상^^
그리고는 풀뿌리자치연구소 '이호'소장님의 주관으로
각단체들이 하고싶은 일들을 찾고, 지역운동, 풀뿌리운동에 대한 생각공유하는 시간들을 갖었다.

요체는 이런것이다.
서울의 지역을 기반으로 주민과 활동가들이 서로 성장하는것이 풀뿌리운동, 즉 지역운동이다.

하루종일 진행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런곳에 참여하면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워크샵을 마치고
저녁에는 서울지역 풀뿌리 시민사회단체 지방선거 대응 워크샵을 가졌다.
이미 노원, 도봉, 관악, 마포등에서는 시민단체 중심의 유권자연대가 조직되었다한다.
각각 반한나라당, 비민주당(or반민주당, 민주당포함등)연대의 범위는 다르지만
진보정당과 풀뿌리단체들이 공동으로 지방선거에 대응하고 공동의 지역의제를 갖고 선거에 임한다.

이건 매우 뜻깊고 진보한 성과라 할수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로 서울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보수정당에 대한 낙선운동.
또한 개별적으로 민주당, 혹은 무소속, 진보정당으로 뛰어들어 지방선거를 치룬적은 있어도 지역별로 유권자연대가 꾸려지고 이러한 성과들과 의제들을 통일하자는 움직임들은 잘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암튼 우리 동대문지역도 유권자연대 꾸려보아야겠다.


봄방학을 맞이하여 저소득가정 어린이 놀토교실의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학습에 다녀왔다.

방학때 아이들이 집에서 티비만 보거나 피씨방을 전전하길래, 금요일 체험학습강사협회의 답사일정이 있어 시간이되는 아이들 4명을 데리고 혜화동의 쇳대박물관과 구리 고구려대장간 마을에 다녀왔다.

오늘의 체험학습 주제는 <철에 대한 이해>였다.
우리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철에 대해서 잘모르는 것이 현실인데,
서울에 제철소라던지 제강회사가 없는지라 철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떠한 특징을 갖고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배우는 현장학습이었다.

그래서 잡은 코스가 쇠를 갖고 열쇠를 전시한 쇳대 박물관과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세트장으로 더 유명한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다.

쇳대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옛 자물쇠 및 세계 각국의 독특한 자물쇠를 주제의 박물관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자물쇠들을 수집, 보존 연구하며 대중에게 전시 활동을 통해 우리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구리시에 있는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고구려역사 공부에는 제격이었다. 다만 고구려를 입체적으로 보기는 힘들고 전시관의 판넬을 기본으로 아차산을 둘러싼 고구려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면 좋을 것 같다.
또한 태왕사신기 촬영장이기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시절 고구려 전성기에 대한 설명도 하면 좋을듯..


 ▲혜화동의 쇳대박물관

▲쇳대박물관의 여러 자물쇠와 열쇠들
▲거북이 모양의 빗장
▲고구려 대장간 마을
▲아차산 4보루를 보며 고구려전성기의 유적을 찾아보며 역사수업중

▲태왕사신기 세트장의 재미있는 기구
▲아이들이 만져봄
▲멋진 곳들은 사진으로 담기도..
▲대장간마을 입구에서 카메라를 갖다대니 눈을 던지려는 녀석들
[공연 개요]


- 공연일시 : 2010년 2월 26일 ~ 3월 7일(3월 2일 제외)

- 공연시간 : (평일) 오후 8시 / (토) 오후 4시,7시 / (일) 오후 4시

- 공연장소 : 대학로 우석 레파토리

- 출 연 : 엄경환, 한호선, 장재화, 최승집, 김창배, 임기택, 야초

- 연 출 : 야 초

- 제 작 : 극단 공간

- 예 매 : 인터파크 / 티켓링크

-티켓: 현매 15000원 단체 20인 이상 10000원

- 후 원 : 용산범대위, 민주노총, 전국철거민연합, 전국철도노동조합, MBC뷰티아카데미

- 기 획 : 이니스미디어 / 엔터테이먼트 쩡

- 문 의 : 이니스미디어 031-925-7001 / inis7001@naver.com

엔터테인먼트 쩡 010-2377-3869/ sim3869@hanmail.net



[기획 의도]


자본에 의한 무차별한 철거로 인해 철거민들은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고 외지고 개발되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주되어 가지만 그곳은 머지않아 또다시 개발되어지고 철거민은 또 다른 곳으로의 이주가 되어지는 반복의 악순환으로 점점 갈 곳이 없어지지만 정부는 자본을 앞세워 더욱 더 강력한 개발 정책으로 철거는 멈추어지지 않고 있으며 교모하고 지속적이며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철거를 당하는 사람들은 항상 약자라는 이유로 물질이 없다는 이유로 자본을 가진자들과 정부로부터 방관과 멸시를 당하며 인간으로 누려야 할 주거권마저 뺏기고 있다.

용산의 참혹한 대참사가 전국 어디에서든 도사리고 있다.

용산의 대참사를 회상하고 되새기며 “특화지구” 라는 공연을 상연함으로 하여 자본을 앞세운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과 철거 이주민들에 대한 대책 없는 정책을 많은 국민들에게 알리고 다시는 무분별한 철거로 인하여 용산대참사와 같은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 공연으로 이루어지는 수익금은 용산대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하여 쓰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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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Feb

놀토교실 아이들에게 받은 세배

작성자: 조회 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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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인가 봅니다. 놀토교실에 찾아오는 초등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사무실에 놀러왔습니다.

오후내내 아이들과 부루마블게임을 하다가 문득 세배를 한답니다.

귀여운것들,,ㅋ 세배를 받고 세배돈을 달라고 졸라대네요.
가만있자,,, 뭘준다?

그래. 지난 크리스마스에 기부받은 인라인스케이트가 있었습니다.
4학년 아이에게 주니 좋아서 아주 죽습니다^^

아이들이 사무실에 놀러와 게임도 하고 좋아하는것은 저도 기분좋은 일이지만 
전문적인 학습지도 급식등을 제공할수 있는 공공보육시설이 많아져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